[리뷰]포퓰리즘 -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36

Updated:

Contents

  1.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2. 세계 각지의 포퓰리즘
  3. 포퓰리즘과 동원
  4. 포퓰리스트 지도자
  5.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6. 원인과 대응

Review

먼저 교유서가 첫 단추 시리즈가 무엇인지 소개하겠습니다. 옥스포드 대학교에 A Very Short Introduction를 한국어로 번역한 시리즈입니다.

주제는 다양합니다. 숲, 철학 부터 시작하여, 역사, 2차세계대전, 이빨 등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있어서 독자의 취향에 맞게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상 깊었던 구절 위주로 정리해서 작성하겠습니다.


1.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자체나 다른 어떤 민주주의 모델보다도 자유민주주의와 가장 근본적으로 병존한다.

학자들은 포퓰리즘을 규정하는 속성들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떤 형태의 포퓰리즘이든 일종의 ‘민중’에 대한 호소와 ‘엘리트’에 대한 비난을 포함하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포퓰리즘이란 사회가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동질적인 두 진영으로, 즉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뉜다고 여기고 정치란 민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다.

이런 이유로 포퓰리즘은 단독으로는 현대 사회가 낳는 정치적 문제들에 복잡한 해답도 포괄적인 해답도 내놓지 못한다.

포퓰리즘에는 세 가지 핵심 개념이 있다. 민중, 엘리트, 그리고 일반의지다.

포퓰리즘 개념과 현상을 둘러싼 논쟁은 대체로 ‘민중(the people)’ 용어의 모호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부분 다음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주권자로서의 민중, 보통사람들로서의 민중, 국민으로서의 민중.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측면은 분명 도덕성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엘리트가 누구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 모든 엘리트가 민중의 ‘일반의지’에 반대하는 하나의 동질적이고 부패한 집단으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엘리트는 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부문에서 지도적 위치를 점하는 사람들을 대부분 포함한다. 그렇지만 분명 포퓰리스트들뿐 아니라 이들 부문에서 포퓰리스트에 동조하는 사람들까지도 엘리트에서 제외된다.

많은 경우 포퓰리스트들은 엘리트와 민중에 대한 여러 해석을, 즉 계급, 종족, 도덕성을 결합시킬 것이다.

포퓰리즘에서 말하는 일반의지 개념은 공적 영역에서 합리적 과정을 거쳐 구성되기보다는 ‘상식’에 기반한다. 이는 상이한 요구들을 한데 모으고 공동의 적을 알아보는 데 유용한 특정한 얼개에 일반의지 개념을 끼워맞춘다는 뜻이다.

2. 세계 각지의 포퓰리즘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사회주의의 어떤 형태와 포퓰리즘을 결합시키고,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대체로 민족주의의 어떤 유형과 포퓰리즘을 결합시킨다.

세계에서 민주적 이상의 헤게모니가 강해지는 추세, 아울러 선거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민중의 일반의지를 찬양하는 이데올로기인 포퓰리즘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포퓰리스트는 우세한 정치 세력이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충분히 제기하지 않고 있는 사회적 불만을 감지하고 정치 쟁점화하는 데 능하다.

3. 포퓰리즘과 동원

포퓰리즘적 동원의 세 유형을 확인할 수 있다. 사인적 지도력 유형, 사회운동 유형, 정당 유형이다.

포퓰리즘적 동원의 전형적인 형태는 기존 정당조직에 대체로 의존하는 개인이 자신의 매력을 바탕으로 캠페인을 펼치고 지지를 모으는 식이다.

대부분의 경우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자기 주변에 모종의 정치조직, 흔히 선거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용악으로 간주되는 조직을 만든다. (중략) 이 조직은 내부 성원이나 위원회, 구조가 거의 없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이런 유사 조직은 강한 지도자가 선거 경쟁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위해 얼마간 임시변통으로 구축하고 또 완전히 통제하는 실권이 없는 정치 구조물이다.

사회운동은 사회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불만이 무엇인지 알리는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운동들은 보통 이데올로기 구조에 의존한다.

포퓰리즘은 하나의 동질적인 범주로서의 ‘민중’에 대해 말한다. 포퓰리즘은 ‘부패한 엘리트’에게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사회 전체는 아닐지라도 개인들의 폭넓은 집단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가정하는 이념 집합이다.

어쨌거나 포퓰리스트 행위자와 유권자는 보통 기존 정당들을 가리켜 부패한 조직이라고 주장한다.

거의 모든 포퓰리즘적 동원은 굳건한 조직구조 없이 출발한다.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잘 조직된 기존 정당을 넘겨받은 다음 비포퓰리즘 정당에서 포퓨릴즘 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경우는 예외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유럽에서는 이것이 점점 더 흔한 경로가 되고 있다.

4. 포퓰리스트 지도자

학술 논쟁에서나 대중 논쟁에서나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암묵적 또는 명시적으로 카리스마적 스트롱맨으로 규정된다.

포퓰리스트 스트롱맨들은 지도자를 남성적이고 잠재적으로 폭력적인 인물로 묘사하는 ‘지도자 숭배’ 에 기반해 통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포퓰리스트 지도자에게는 스스로를 민중의 진정한 목소리로 내세우는 것이 극히 중요한 일이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부패한) 엘리트에 속하지 않으며 (순수한) 민중의 일부라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

포퓰리스트 스트롱맨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사회의 성관념을 활용해 민중의 목소리 이미지를 구축한다. 무엇보다 그들을 성별을 활용해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내세운다.

스스로를 순수한 민중과 연결하기 위해, 많은 여성 포퓰리스트들이 문화에 규정되는 ‘좋은 여성’의 특징을 강조하는 한 편 자신을 주로 어머니 또는 아내로 내세우곤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진정성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기득권층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유권자들과의 유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들은 부패한 정치인들 덕분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부패에도 불구하고 재산을 모은 정직하고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자신을 내세운다! 더 나아가 기업가-포퓰리스트들은 직업정치인과 달리 자신은 마지못해 정치인이 되었다고, 금전상 이익을 위해 정계에 입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성공한 포퓰리스들은 거의 모두 인사이더-아웃사이더이다. 다시 말해 정치 엘리트, 즉 정치체제의 핵심 집단에 속했던 적은 없지만 그들과 닿는 (강한) 연줄을 가진 사람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공하는 포퓰리스트와 성공하지 못하는 포퓰리스트를 가르는 요소는 대개 이런 (이전) 엘리트와의 연줄이다.

포퓰리즘은 평범한 이력을 쌓아가는 비범한 지도자들의 보통사람들을 위한 정치로 여길 수 있다.

5.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간단히 말해 포퓰리즘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면서도 현대 세계에서 지배적 모델인 자유민주주의와 충돌한다. 포퓰리즘은 그 무엇도 ‘(순수한) 민중의 의지’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다원주의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따라서 소수자의 권리는 물론이고 그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적 보장책’에도 반대한다.

실제로 포퓰리스트들은 자유민주주의 모델에서 생득권인 기본권을 보호하는 독립 기관들을 비판하면서 국민주권 원리를 들먹이곤 한다. 가장 자주 표적이 되는 기관은 사법부와 미디어다.

예상대로 권력을 잡은 포퓰리스트들은 국영 미디어를 정부의 대변인으로 바꾸고 얼마남지 않은 독립 언론사들을 폐쇄하고 괴롭혀 미디어 지형을 뜯어고치곤 했다. 최근에 에콰도르, 헝가리, 베네수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포퓰리즘은 자유민주주의에 내재하는 긴장, 즉 다수결 원리와 소수자 권리 사이에서 조화롭게 균형을 잡으려다 생기는 긴장을 활용한다. (중략) 중요한 쟁점에서 다수결 원리와 소수자 권리가 중첩되기 때문이다(차별금지법을 생각해보라). 포퓰리스트들은 다수결 원리를 위반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 개념 자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궁극적인 정치적 권위는 ‘민중’에게 있지 선출되지 않은 기구에 있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포퓰리즘은 민중의 권력을 제한하는 그 어떤 비선출 기관이라도 불신하는 경향이 있는 까닭에 민주적 극단주의의 형태로, 좀더 좋게 말하자면 비자유민주주의의 형태로 나아갈 수 있다.

자주 쓰는 방법은 엘리트층이 논의하지 않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쟁점들을 정치화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이 선거민주주의나 최소민주주의하에서는 체제의 발전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완전한 자유민주주의하에서는 체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6. 원인과 대응

극적인 경기 침체와 같은 중대한 정책 실패, 그리고 무엇보다 만천하에 드러난 체계적인 부패 사례는 국민들 사이에서 포퓰리즘적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촉매로 기능할 수 있다.

모든 전통 미디어는 갈수록 늘어나는 온라인 미디어와 경쟁해야 한다. 믿기 어려우리만치 경쟁이 치열한 이 시장에서 미디어 조직들은 심각한 정치적 쟁점에 대한 보도를 줄이고 범죄와 부패 - 포퓰리스트의 주식(主食) - 처럼 팔릴 만한 쟁점에 대한 보도를 늘려왔다. 이 모든 변화의 결과로 꼭 포퓰리즘적 성격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 포퓰리즘적 메세지에 더 유리한 정치문화가 형성되었다.

중대한 부패 스캔들과 특히 제도적 부패는 중요한 인구 집단들 사이에서 포퓰리즘이 자라날 비옥한 온상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부패와 싸우고 부패를 막는 것이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데 아주 중요한 전략이다.

주된 문제는 (중략)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일이 잘 풀릴 때는 모두 의도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전혀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은 정부 경제정책의 성공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경기침체는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기구들과 ‘세계화’ 등 외부 원인 탓으로 돌린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일부다. 그렇지만 거울상보다는 자유민주주의의 (께름칙한) 양심에 더 가깝다.

포퓰리즘 세력의 지지층과 더 나아가 엘리트층의 일부까지 설득하려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은 ‘민중’에 영합하는 단순한 해결책과 평범한 시민들의 도덕적,지적 능력을 무시하는 엘리트주의적 담론을 모두 피해야 한다. 그런 해결책과 담론은 포퓰리즘 세력을 강화할 뿐이다.

포퓰리즘 수요를 줄여야만 자유민주주의가 실제로 강화될 것이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단어로만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포퓰리즘이란 정치인들의 표팔이를 위한 복지 정책이다.’라고 말이죠.

하지만 책을 읽는 첫 부분부터 생각이 달라집니다. 위에서도 작성했지만, 책을 관통하는 구절이라 한 번 더 강조하겠습니다.

포퓰리즘이란 사회가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동질적인 두 진영으로, 즉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뉜다고 여기고 정치란 민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이다.

포퓰리즘이란 하나의 복지정책을 말하는 줄 알았지만 하나의 이념으로서 규정합니다. 하지만 중심이 얇아 사회주의나, 민주주의의 이념에 기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포퓰리스트들은 모순적입니다. 어떤 근거도 없이 사회의 상위 계층을 엘리트로 규정하고 도덕성을 의심합니다. 이런 의심은 우리에게 동조할 때 사라집니다.

물론 정치인들 모두 포퓰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표를 먹고 살기 때문에 자신의 지지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포퓰리즘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경계합니다. 세계 원유 매장량 1위에 베네수엘라를 망하게 한 원인 중 하나로 포퓰리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포퓰리즘 하나로 망하진 않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유가 폭락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포퓰리즘은 그 속도를 가속했다 생각됩니다. 우리도 포퓰리즘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새로운 대통령으로 출발했습니다. 올해는 밝은 이야기만 들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ags:

Categories:

Updated: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