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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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 제1부 평균의 시대
- 제1장 평균의 탄생
- 제2장 표준화된 세상
- 제3장 평균주의 뒤엎기
- 제2부 교육 혁명을 위한 개개인성의 원칙
- 제4장 인간의 재능은 다차원적이다
- 제5장 본질주의 사고 깨부수기
- 제6장 이정표 없는 길을 걷는다는 것
- 제3부 평균 없는 세상
- 제7장 개개인성의 원칙으로 성장하는 기업
- 제8장 교육을 바꿔라
- 제9장 평균주의를 넘어
Review
독서 모임에서 발제한 책으로 읽게되었습니다. 좋은 책을 발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는 크게 두 부분으로 책을 나눠서 이야기 합니다.
첫 부분은 평균이 불러온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평균주의가 불러온 사회를 어떻게 타파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서술합니다.
이번 포스트도 위 순서에 맞게 따라가겠습니다.
먼저 평균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통계학적으로 우리가 아는 평균은 산술평균인데, 이는 단순히 모든 관측값을 더해서 관측값 개수로 나눈 것이다. 입니다.
골턴이라는 사람은 이 평균이라는 지표를 향상시키려 힘쓰는 것이 인류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사람들을 평균을 기준으로 계층화시켰습니다.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훌륭한 대가들은 절대 기형이 아니라 이른바 우월층 에 속한다고 여겼다. 한편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능층 이라고 칭했다.
골턴은 인간을 최하위 계층인 저능층 에서부터 중간 계층인 평범층 을 거쳐 최상층인 우월층 까지 14가지 계층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는 평균의 의미에 획기적 변화를 일으켜 평균을 정상의 개념에서 평범함의 개념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이 평균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평균 이상이 되려고 기를 쓰는 이유가 아주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평균의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균 이하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퍼센트의 정도에 따라 고생길행이냐 성공행이냐가 갈린다. 운명이 개인적으로 정해지기보다는 통계적 그룹의 일원으로서 배당되는 것이다. (중략) 그것도 고정불변의 운명으로 인한 파멸이라기보다 숫자상의 기준에 따라 개인적으로가 아닌 평균적으로 떨어지는 그런 운명의 파멸이다.
인터넷에 흔히 보이는 단어만 봐도 문제가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충, 300충, 지잡대 등등 범위가 조금 더 광범위하지만 이 모두가 그래서 당신은 평균 이상이냐? 이하냐? 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구성원들을 저능하고, 패배자로 취급하는 사회는 잘못되었죠.
또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수능입니다. 우리는 등급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물론 많은 노력과 인고의 시간을 견딘 학생들이 좋은 대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잘못됐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경쟁은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단 하나의 피라미드(수능)의 끝으로 가기 위한 경쟁은 필요 이상의 과도한 경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시와 같이 다양한 방법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근본적으로 대학 에 진학해야 한다는 피라미드의 끝은 달라지지가 않습니다. 결국, 사회는 바뀌지 않겠죠.
그렇다면 우리를 우월층과 저능층으로 가르는 평균은 과연 우리의 운명을 판가름할 만큼 의미가 있을까요? 평균이라는 이 용어는 이상치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명의 사람 중 1명은 100을 벌지만, 나머지 9명은 10을 번다고 가정했을 때, 이 집단의 평균은 몇일까요? 평균은 19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9명의 사람은 저능하고 다른 1명은 우월해지는데, 결국 우리의 운명을 가를만한 지표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단순하게 사람들을 순서로 일렬로 세워서 평균 이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비난하는 게 건강한 사회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평균주의가 뒤덮여있습니다. 아니, 평균보다 더 심각하다고 생각됩니다. 중소기업 종사자 수가 70%가 넘지만, 그들을 패배자 취급하는 이 사회는 상위 10%, 20% 안에는 들어가야 드디어 평균적인 사람으로 취급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문제만 있어 보이는 이 평균주의는 경제를 발전하게 하고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테일러는 1890년대부터 평균 방법이 오류를 최소화해준다는 가정과 같은 방식으로 비효율성을 최소화해줄 새로운 산업 조직의 비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비전이란 바로 표준화였다.
공교육의 목표는 계몽화가 아니다. 현재의 공교육은 가능한 한 많은 개개인들을 똑같은 안전 수준으로 강등시키고 표준화된 시민을 길러내고 훈련시키면서 반대 의견과 독창성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미국 사회 전역에서의 보편적 평균주의 시스템 시행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민주주의의 수립에 기여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테일러주의는 사회 전반적으로 임금을 인상시켰으며, 어쩌면 지난 20세기의 그 어떤 경제 발전기보다 더 많은 사람을 빈곤에서 구제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립니다. 이제 평균주의는 우리 사회의 안쪽부터 갉아 먹고 있습니다. 엑셀의 셀처럼 사람을 교체 가능한 평균적 인간처럼 다루는 사회가 아닌 저자가 제안하는 사회, 교육, 사고는 어떤 방식인지 알아보겠습니다.
평균주의의 주된 연구 방법은 종합 후 분석(Aggregate, then Analyze)이다.
개개인의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분석 후 종합(Analyze, then Aggregate)를 유도한다.
인간의 중요한 특성은 거의 모두가 다차원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재능이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평균에 의존해 판단할 경우 한 사람의 행동에서 중요한 세부 요소들을 모조리 놓치는 셈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평균주의 사고에 속아 믿게 되는 또 하나가 바로 정상적인 경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하거나 배우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하나의 올바른 경로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 교육의 시스템 구조는 그런 개개인성을 고려해 설계되지 않으며 그에 따라 학생들 모두의 잠재력과 재능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
기존 시스템의 평균주의 구조에서 학생 개개인을 중요시하는 시스템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개념을 채택해야 한다.
- 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 성적 대신 실력의 평가
-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 허용하기
저자는 평균주의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다차원이라는 키워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들쭉날쭉하여 몇 개의 단순한 지표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차원 분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에 맞춰 우리나라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고교학점제를 통하여 기존의 획일화된 교과 과정이 아닌 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진로에 맞게 수업을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식의 민주화 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까요? 이는 과거 성직자 및 학자와 같은 특권 엘리트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인구가 지식을 습득하고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술의 발전도 한몫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컴퓨터에 앞에 앉아서 전문적인 지식을 인터넷에 검색과 온라인 강의로 습득할 수 있습니다.
사회는 느리지만 천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회가 필요한 표준화된 시민으로 성장했다면, 미래에는 자신의 들쭉날쭉한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합니다. 인생의 출발선과 도착하는 곳은 모두가 다릅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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