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 - 중국의 눈으로 바라본 마이클 샌델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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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 서문 - 중국과 마이클 샌델의 만남
  • part 1 정의, 조화 그리고 공동체
    • 01 조화 없는 공동체? - 리첸양
    • 02 개인, 가족, 공동체 그리고 그 너머 - 바이통동
    • 03 덕으로서의 정의, 덕에 따른 정의 그리고 덕의 정의 - 후앙용
  • part 2 시민의 덕과 도덕 교육
    • 04 시민의 덕에 관한 샌델의 관점 - 주후이링
    • 05 유가적 관점에서 본 샌델의 『민주주의의 불만』 - 천라이
  • part 3 다원주의와 완벽: 샌델과 도가 전통
    • 06 젠더, 도덕적 불일치 그리고 자유 - 로빈 왕
    • 07 만족, 진정한 가장 그리고 완벽 - 폴 담브로시오
  • part 4 자아관: 샌델과 유가 전통
    • 08 유가 윤리에서 ‘자아’의 이론화 - 로저 에임스
    • 09 도덕적 행위자가 없는 도덕 - 헨리 로즈몬트
    • 10 유가적 역할 윤리에 대한 샌델의 대응 - 폴 담브로시오
  • part 5 샌델이 답하다
    • 11장 중국 철학에서 배우기 - 마이클 샌델

Review

저자의 ‘공정하다는 착각’를 읽고나서 찾아보게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정하다는 착각과 비교하면 내용이 상당히 어렵네요.

다른 책에비해 투자한 시간이 월등히 많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내용이 어렵고 길어서 제가 생각하기에 책에 있는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가며 진행하겠습니다.


01 조화 없는 공동체? - 리첸양

두 철학-유학과 샌델의 철학-이 일치하는 핵심 지점은 정의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반면 중요한 차이점은 ‘조화’와 관련된다. 유학에서는 조화를 공동체 개념의 중심을 놓는 반면, 샌델 식의 공동체 이해에서는 조화에 대한 어떤 논의도 나오지 않는다. 이 글은 유가의 입장에서 샌델의 공동체주의의 철학을 지지함과 동시에 비판한다. -p.28

사회의 작동을 규제하거나 촉진하는 두 가지 주요 장치 - 법(法)과 예(禮) -p.30

유가의 이상에 따르면, 예를 실천하는 것은 사람들이 동료 인간에 대한 돌봄의 감각과 인자한 마음을 수양하여 사회 안에서 긍정적 관계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서다. -p.31

공자는 형범에 의존하여 사회를 운영한다면, 사람들은 어려움을 피할 수 있겠지만 ‘수치심’ 이라는 도덕적 감각을 기르지는 못할 것이며, 오직 예를 행함으로써만 형벌을 피하는 것은 물론 도덕적 수치심을 기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p.31

유가적 관점에서 예와 인은 긍정적 인간관계를 맺게 한다. 이러한 덕목들을 통해 사람들은 강력한 공동체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한 공동체에서 최고의 덕은 정의보다는 조화로운 관계다. -p.32

유가가 이해하는 공동체란 사회적 조화로서 그 구성원들이 공동선을 위해 상호 변화를 이룸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p.38

유가적 견해에서 볼 때 사회적 조화란 좋은 삶의 본질이다. 더 강하게 말한다면, 사회적 조화 그 자체가 좋은 삶이다. 공동체의 동료 시민들과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며 번영한다. 타자와 조화를 이루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발전시키고 공동체 안에서 좋은 사람, 좋은 가족 구성원, 좋은 시민이 된다. -p.40-41

“하나의 음으로 음악을 만들 수 없고, 하나의 물건으로 다채로움을 낼 수 없고, 과일 하나로 여러가지 맛을 낼 수 없고, 한 가지만으로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다양성은 조화의 필수 조건이다. -p.41

샌델의 공동체주의 철학은, 그 논의에 조화를 적절하게 포함시켜야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p.45

02 개인, 가족, 공동체 그리고 그 너머 - 바이통동

즉,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우리는 적합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다음 질문은 어떻게 적합한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공자는 “가까운 것에서 유비를 찾자”고 대답한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매우 중요한 제도가 바로 자신의 가족이다. 이는 왜 유가 사상가들이 가족의 가치에 그토록 주의를 많이 기울이는가에 대한 이유가 된다. 그들이 볼 때 가족은 통상 우리에게 자아의 한계를 초월하게 하는 디딤돌이며, 우리가 도덕적 행위자, 즉 적절한 사회적 관계를 인식하고 유지할 수 있는 인격체로 훈련시켜 주는 터전이다. -p.51

정부는 특정한 가족적 가치 및 도덕을 일반적으로 증진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정당화 가능한 방식으로 수행한다. (중략) 정부가 증진시켜야 하는 것은 존 롤스의 용어를 차용하여 말한다면, 중첩저 합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p.54

“서구의 공동체 주의자들은 공화주의적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그들이 활동적이고 공공 정신을 지닌 다수의 참여를 선호한다는 의미다. (동)아시아의 공동체주의자들은 보다 가족지향적이며, 적극적인 정치 참여는 교육받은 소수가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p.55

03 덕으로서의 정의, 덕에 따른 정의 그리고 덕의 정의 - 후앙용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세 가지 접근 방식으로 정의를 탐구한다. 바로 복지 또는 행복의 최대화로서 공리주의 정의관,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 자유-기반 정의관, 덕을 인정하고 영예와 포상을 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이다. -p.61

세 번째 접근 방식에서 두 가지 핵심적 특징은 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a Virtue)와 덕에 따른 정의(Justice according to Virtues)로 요약할 수 있다. -p.61

덕으로서의 정의

존 롤스의 유명한 말, “정의란 사회 제도의 첫 번째 덕이다”는 이런 의미에서 한 말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이 두 가지 정의의 관념, 즉 개인의 덕으로서의 정의와 사회 제도의 덕으로서의 정의는 만약 관계가 있다면 어떤 관계인가? -p.65

그런 대규모 사회에서 자원 분배는 국가를 통해 이루어져야만 한다. 개별 구성원이 정의롭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분배와 교정이 정의로울 수 있다. -p.67

그러나 롤스의 정의의 원칙들이 사실상 사회 제도의 정의를 위한 정의의 원칙들이라고 하더라도, 인간 본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도출한 정의의 원칙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p.68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유학자들은 늘 사람은 오로지 바른 일을 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바른 마음으로 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p.71

덕에 따른 정의 혹은 덕의 정의

롤스는 자연적인 우연과 사회적 우연에 따라서 사회에 기여하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기여를 기준으로 사람들에게 자원을 분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p.74

아주 직설적으로 말해서 샌델의 덕에 따른 정의가 덕에 따라 특정한 거을 분해하는 것과 간련된 정의라면, 유가에서 덕의 정의는 덕 자체의 분배에 대한 정의다. -p.76

덕은 분배될 수 있는가?

문제는 덕을 어떻게 분배하는지에 있다. 유가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 째는 자기 수양의 필요성이다. (중략) 둘째로 정의는 개인 행위자든 정치 지도자든 우리에게 유덕한 사람은 포상하고 악덕한 사람은 처벌하는 대신 악덕한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악덕을 극복학 더는 악덕하지 않게 한다. -p.82-83

첫 번째 방안이 도덕작 자기 수양이고, 둘째 방안은 도덕 교육이다. 나는 둘째 측면에 집중하고자 하는데 그 까닭은 부정의가 있을 때, 즉 덕의 분배가 불평등할 때 정의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가 바로 우리의 관심이기 때문이다. -p.83

그래서 유가에서 말하는 황금률은 본질적으로 내가 유덕한 사람이 되고자 하면 다른 사람들이 유덕해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는 내가 악덕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들이 악덕해지지 않게 함을 뜻한다. -p.84

“스스로 곧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곧게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맹자는 곧은 사람은 곧지 못한 사람을 곧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p.87

유덕한 사람은 포상하고 악덕한 사람은 벌하는 것이 아니라 악덕한 사람들이 자신의 악덕을 극복하여 유덕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유가가 말하는 덕의 정의다. 이는 곧 덕을 평등하게 분배하는 정의다. -p.90

유가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는 어떻게 다른가

내가 지금까지 덕의 정의라는 명칭으로 말하는 것은 개인이든 정부든 정의의 덕을 갖춘 도덕 주체는 사람들의 덕을 함양하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p.90-91

덕의 정의에 대한 유가적 개념과 샌델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덕에 따르는 정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중략) 첫째로, 유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유덕한 사람들에게 정치적 공직을 맡게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전혀 다르다. 샌델은 유덕한 사람들을 인정하고, 포상하고, 영예롭게 할 것을 강조한다. -p.91

샌델이 최고의 플루트를 최고의 연주자에게 주어야 하는 공리주의적 이유와 아리스토텔레스적 이유를 구분한다. (중략) 나는 유가라면 공리주의적 이유를 채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덕한 사람들에게 공직을 맡겨야 하는 이유는 포상하고 영예롭고 인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유덕한 사람들이 공직을 맡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덕을 갖게 하는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p.92

둘째로, 유가가 샌델을 비롯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에게 동의하지 않을 또 다른 측면은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국민을 덕이 있게 하려고 일하는 방식이다. -p.92-93

예의범절은 형벌 법규와는 다르다. 예의범절을 어겼을 때는 처벌을 받지는 않으나 멸시당해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덕을 통해 공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정치 지도자의 모범적인 유덕한 행위다. -p.95

아리스토텔레스는 부정의를 불평등으로 보고, 교정적 정의란 본래의 비례적 평등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p.100

응보적 정의론이 부정의한 행동으로 어긋난 본래의 평등을 회복하려는 점에서 과거지향적이라면, 공리주의 이론은 미래의 부정의한 행동이 초래할 일을 방지하려 하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이다. -p.101

04 시민의 덕에 관한 샌델의 관점 - 주후이링

공동선을 이해하는 샌델의 방식과 숙의를 강조함으로써 샌델의 사상은 공동체주의보다는 공화주의 이론에 더 부합한다. -p.109

샌델의 공화주의 이론에서 시민의 덕이 갖는 중요성

첫째, 시민의 덕은 공동선에 필수적이다.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것은 시민공화주의의 전형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다. -p.111

둘째, 어떤 의미에서 자유는 일종의 시민의 덕이다. -p.113

셋째, 시민의 덕은 시민 참여를 지탱한다. -p.114

시민의 덕 이해하기

공화주의에서 시민의 덕은 공동선과 관련이 깊다. 시민의 덕이 갖는 가장 전형적 특성은, 공동선을 인식하고 공동선을 개인적 이익보다 우선시하며 공동선을 증진하는 것이다. -p.116

이에 더해서, 연대와 충성심과 관련하여 또 다른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무엇에 대한 충성심인가?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고 또 국가나 사회의 억압을 피하려 하면서, 시민들은 무엇에 대해서 자신의 연대와 충성심을 보여야 하는가? -p.120-121

05 유가적 관점에서 본 샌델의 『민주주의의 불만』 - 천라이

정부의 도덕적 중립성

자유 주의 정치 이론의 ‘중심 관념’은, 자국의 시민들이 신봉하는 도덕적·종교적 견해에 대해 중립을 짘야 한다는 것이다. -p.123-124

샌델은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신 공화주의 이론을 선호한다. 그 중심에 바로 자치에 대한 관심이 있다. 공화주의는 공동선과 관련하여 시민들 사이의 협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동체의 운명을 만들어 가고자 노력한다. -p.124

“자유로운 사회의 궁극적 토대는 사람들을 묶어주는 결속감이라는 유대다. 그러한 결속감은 한 민족의 전통을 모아 대대로 전해지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 문명을 구성하는 귀중한 공동생활이 영속되도록 기여하는 정신과 영혼의 모든 행위자들을 통해 길러진다” -p.126

시민의 덕

공화주의는 오랫동안 시민의 덕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염려해 왔다. -p.127

공화주의자들이 생각하기에 정부는 덕을 갖춘 사람들이 통제해야 하며 공동선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여기서 공동선은 개인적 이익의 총합 그 이상을 의미한다. -p.127-128

자유는 자치를 요구하고, 자치는 시민의 덕에 의존한다는 생각이 바로 공화주의 이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p.128

“우리는 위대한 미국적 가치, 즉 노동의 존엄성, 가족의 따뜻함, 이웃의 힘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p.131

시민의 덕에 대한 심층 논의

시민의 덕이란 사람들이 ‘시민’ 되기를 통해 생겨나는 덕의 요구조건이지만, 이와 달리 사적 도덕이란 사람들이 ‘사람답게’ 되기를 통해 생겨나는 도덕적 요구조건을 가리킨다. -p.132

사적 도덕은 기인의 인격이나 도덕 수양과 관련되는 반면 공적 도덕은 국가와 사회를 이롭게 하는 덕을 가리킨다고 논했다. -p.133

우리는 현대 중국의 개인적 삶에서 주로 요구되는 세 부류의 덕목을 찾아볼 수 있다. (중략) 처음 두 그룹의 덕은 “사적인 덕”에 속하며 (중략) 세 번째 그룹은 “공적인 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개인에게는 기본적인 공적 도덕을 구성한다.-p.135-136

인애, 도의,
성실, 신뢰성,
효도, 화목

자강, 근면,
용기, 정직,
신실, 염치,

애국, 준법,
집단이익 지향, 예의,
공적 사안에 참여, 직업에 대한 헌신
덕의 권리

권리의 개념을 최고로 구현한 것이 인권이다. -p.138

몇천 년에 걸쳐 유학 사상은 대부분 학자-관리, 즉 사대부의 사상이었으며, 사대부는 지식인이자 정부의 구성원들이었다. 이 때문에 유가사상은 본래부터 늘 사회에 대한 책임, 덕 그리고 공적인 일에 대한 관심을 요구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p.138

06 젠더, 도덕적 불일치 그리고 자유 - 로빈 왕

‘열녀전’에 나타난 공동선에 대한 여성의 기여

서구의 학자들은 젠더가 이원론적이며 젠더의 구성이 제도적인 남성 우위를 반영하는 반면, 전통 중국에서 젠더는 상관적이고 음과 양, 땅과 하늘, 안과 밖을 모델로 하는 상호 의존성과 상보성의 개념 위에서 구성된다. -p.149

샌델은 이렇게 적었다. “자연적 의무와 달리, 연대성의 책임은 특수하며 보편적이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빚지고 있는 도덕적 책임을 포함하는데, 이는 합리적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특정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p.157

‘장자’에서 도덕적 불일치와 인식론적 주장

이런 개방성을 장자는 “제물(齊物)”이라 부른다. 그것은 모든 만물과 존재가 동등하게 존재하며 그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고 또 지배하지 않는 상태, 각각의 존재와 사물과 사건이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와 장점을 갖는 상태다. 크기나 나이, 지위, 세상의 그 어떤 계급 지위의 자격도 그에게는 무의미하다. -p.161-162

장자는 다양한 내적 가치와 고유한 기능을 인정했다. 그는 우리가 공통으로 지닌 고정된 개념적 범주와 가치를 흔들게 될 대안적 관점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잘 설명한다. 그가 이를 좋게 본 이유는 도추(道樞) - ‘도의 축’ 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p.162

다양한 관점을 허용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은 고양되고 더 높은 지평에 도달할 수 있다. -p.163

샌델의 질문과 중국 철학의 답변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일까?” -p.164

음과 양의 고유한 상호작동과 마찬가지로 공동선은 개인의 자유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개인의 자유는 공동선 없이는 완전하게 표현될 수 없다. -p.166

건강한 사회 구조라면,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젠더 동일성의 내적인 매트릭스를 갖는 대신, 성과 젠더가 자유롭게 활동한 공간을 허용하고 각자가 원하는 정체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p.172

음양 매트릭스는 역동적이고 유동적이며, 그것은 마치 음양의 상호작용과 마찬가지로 공동선과 개인의 자유의 상호작용을 적극 찬성한다. -p.174

밖에서 보면 젓가락 두 개가 똑같아 보이지만, 쓰일 때엔 서로 달리 쓰인다. 하나가 똑바로 있을 때 다른 하나는 검지와 손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두 개의 젓가락을 바꾸면 역할은 그 반대가 된다. 젓가락 어느 짝이 어느 쪽으로 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두 개가 함께 조화롭게 작동하면 그만이다. 장자의 행복한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로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젓가락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p.173-174

07 만족, 진정한 가장 그리고 완벽 - 폴 담브로시오

마이클 샌델은 ‘완벽에 대한 반론’에서 생명공학과 유전자 조작에 대해 철학적으로 비판한다. -p.177

샌델은 적절한 철학적 반성을 하는데 적절한 틀을 제공하려고 다음과 같은 두 유형의 윤리를 제안한다. (1) ‘선물로 받음의 윤리’는 우리의 소질이나 단점이 우리 자신의 설계, 의지, 야망의 산물이 전혀 아님을 인정하게 한다. 그리고 (2) ‘규제의 윤리’는 우리가 선물로 받음이란 의미를 인정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인 인간의 능력”을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충동을 제어할 것을 요구한다. -p.179

도가 사상의 세 가지 핵심 개념 (중략) 첫째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역할, 덕, 이익에 대한 공리주의적 이해와 연관된 절차적 계산에 대한 거부다. (중략) 둘째로 ‘만족할 줄 아는 것’, ‘족함을 아는 것’ 또는 ‘만족의 완성’ 이라 할 ‘지족(知足)’은 기심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되는 주요 부분이면서 또한 그 자체로 대안이기도 하다. (중략) 셋째 개념은 ‘장자’ 에 나오는 ‘참사람’ 또는 ‘성인’이라 할 ‘진인’에 대한 묘사다. -p.180-181

샌델: 선물로 받음의 윤리, 규제 그리고 사회적 직관

샌델이 보기에 근본 문제는 이것이다. “(강화의 기술이) 인간의 자유나 번영에서 어떤 측면을 위협하는가?” -p.183

우리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특정의 속성, 재능, 능력을 선택하고자 할 때 우리는 정복하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정복욕을 억제하고자 샌델은 “선물로 받음의 윤리”와 더불어 “규제의 윤리”를 강력하게 권고한다. -p.185

샌델은 “내가 생각하기에 생명공학 기술을 불평등이나 불이익 또는 빈곤에 대한 치료제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와 경제를 조직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반성하지 못하게 하고, 단지 손해를 보는 사람들을 부적격자로 대하게 만들 뿐” 이라고 말한다. -p.190

도가: 자발성, 만족 그리고 진정한 가장

‘스스로 그러한’ 또는 ‘억지로 함이 없는’ 행위가 실제로 가리키는 것은 어떤 특수한 실천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상호작용할 때 견지하는 일종의 태도를 말한다. -p.193

기심은 지나치게 이윤과 명성에 집착한다. 이윤과 명성을 얻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을 계산하다가. 자기 정신에도 계산을 들이대는 지경에 이른다. -p.194

‘장자’는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 즉 기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익 추구를 위해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노자’에서 지족은 특히 지지(知止), 즉 글자 그대로 ‘멈출 때를 아는 것’과 연결된다. 지지를 보다 시적으로 번역하면 “그침의 완성”이라 풀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족은 ‘만족의 완성’ 이라 옮길 수 있다. -p.196

샌델과 도가: 본성 인정하기

‘기심(機心)’ 또는 ‘인간 행위를 전적으로 기계론적으로 이해하기’는 도가와 샌델 모두가 문제로 삼지만, 정복에 관련된 충동은 훨씬 더 긴요한 문제다. -p.203

샌델과 도가: 규제와 만족

샌델은 우리가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존중할 때 “오만으로 치닫는 위험을 억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p.208

샌델이 프로메테우스적 충동을 억제하는 데 더 관심을 갖는다면, 도가적 접근은 그 충동을 만족시키면서 조정할 수 있는 분출구를 제시하고자 한다. -p.210

샌델과 도가: 거리 두기

우리로 하여금 익숙한 것을 낯설게하는 철학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을 소개하고, 그렇게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p.211

08 유가 윤리에서 ‘자아’의 이론화 - 로저 에임스

샌델의 도전: 내주관적 자아의 이론화

대체로 자유주의적 자아관에서 당연시하는 분리적이고 독자적인, 토대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공자와 그가 말하는 관계적으로 구성된 자아관을 살펴볼 것이다. -p.226

인간 존재 또는 인간 되기?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 (중략) 인간 “존재”란 영구적이고 이미 만들어져 있으며 자기 충족적인 영혼이다. -p.241

유가적 프로젝트: 관계적 탁월성을 성취한 자아

사실 ‘논어’를 읽으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그가 최선을 다해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일생에 걸쳐서 자신의 길을 추구한 관계적으로 구성된 공자다. -p.244

유가적 역할 윤리와 내러티브적 자아 이해

유가적 역할 윤리는 생생한 관계성에서 시작한다. 간단히 말하면, 연합된 삶이 생생한 사실이라고 가정한다. 이 주장은, 어느 누구도 혼자서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246

행위자와 행위와 포괄적인 미덕, 인격적인 특성, 자율성, 동기부여, 이유, 선택, 자유, 원칙, 결과 등에 호소하는 덕 윤리는 개별적인 인간 존재를 출발점으로 설정한다. 그와 반대로 유가적인 역할 윤리는 자아에 대한 좀 더 전체론적이고 사건 중심적이고 “내러티브”적인 이해에 기반한다. -p.247

듀이와 직접적 경험론에 대한 요청: 경험의 전체성 회복에 대하여

“우리가 언어 혹은 저인이라고 부르는 것의 요소들이 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것을 깊숙하게 관통하기 때문에, 언어-독립적인 어떤 것을 ‘그려내는 자’로 우리 자신을 재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p.260

09 도덕적 행위자가 없는 도덕 - 헨리 로즈몬트

오늘날 미국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내가 크게 우려하는 문제가 샌델의 문제의식과 겹친다: 도덕 가치의 침식, 거의 모든 것의 상품화, 사회 참여의 감소, 시민의식의 상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같은 문제다. -p.273-274

더 큰 문제가

모든 사회에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있는데, 그 안에는 가치 서열이 있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견해, 도덕, 자원의 생산/분배 방식을 정당화하는 근거, 사람들이 상호 관계하는 방식에 대한 정당화 근거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p.276

사실 미국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자본주의는 인구가 아직 적고 이민도 대규모로 일어날 때 광산업이나 임업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농업이 확장될 때, 서부 정착이 중요한 쟁점이었을 때와 기본적으로는 똑같은 상황이다. -p.277

이처럼 경쟁과 개인주의(극렬 개인주의보다 덜한 것이라도), 이렇게 두 가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를 이제 더 이상은 밀고 나갈 수 없다. 기능 장애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도덕적으로는 물론 형이상학적으로도 의심스럽다). -p.279

가치와 가치 서열

우리는 이 요구에 따라서 가치들의 서열도 다시 정해야 한다. 그래서 인구는 많고 자원은 감소한 이 세계에서 “최고의 인간이 이긴다”는 생각은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거은 중요하지 않고, 게임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p.281

정말로 우리는 마음 깊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경쟁적인 존재인가? 정말로 우리가 자율적인 개별 자아인가? 우리의 가치 서열을 재조정할 때 달리 어떤 방법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을까? -p.283

권리를 지닌 개인들

우리 두 사람에게 문제는 개별적 자아의 연고성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개별적 자아 개념 자체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했듯이, “사회를 재건할 필요가 있을 때는 낡은 청사진 위에서 시도해 봐도 소용이 없다”, 이제 이 문제를 검토할 차례다. -p.286

역할을 담지한 자아들

그렇지만 이런 관점에서 개인 상호간의 행동을 기술하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그런 존재라고, 우리가 그런 존재성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느끼도록 배운 자아, 우리 인생의 우여곡절에도 변하지 않는 자아인 본질적 자아에 어긋난다. 유가적 관점에서는, 그런 본질적 자아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을 좇는 일이다. 왜냐하면 타인들 사이에서 우리가 사는 역할들을 통해 우리가 구성되기 떄문이다. -p.289

가족에서 시작한 유교적인 역할은 전통적이고 위계적이기는 하지만 유동성을 갖는다. 첫째, 역할의 상호성은 모든 상호관계에서 양방향이다. (중략) 둘째, 나이가 들면서 우리 각자는 수혜자에서 후원자로 되었다가 다시 수혜자로 돌아온다. -p.292-293

가족

결과적으로 이 제도를 유지할 것인지 여부는 사실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가족 제도를 개선해서 가족 구성원을 잘 키워 냄과 동시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p.302

“가족 가치”라는 어구가 물론 오늘날 생각 있는 많은 사람에게 반감을 사는 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어구가 초보수주의적인 사회적·정치적 지향을 부추기고, 가부장주의나 성차별주의, 동성애 공포증을 강화하는가 하면, 또 종교적 신조에 대한 해석 중에서도 합리적 믿음을 방해하는 것에 뿌리박은 지향들을 부추기는 데 동원하기 때문이다. -p.302-303

유가적 가족의 또 하나의 결정적 특징은 조상에 대한 존경이다. -p.308

역할을 담지한 자아상의 가족 옹호 이데올로기는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보다는 현재 우리의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p.311

10 유가적 역할 윤리에 대한 샌델의 대응 - 폴 담브로시오

유가적 역할 윤리는 전적으로 자신의 역할과 관계가 자아를 구성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여기에는 사회적 관계 이전에 존재하였거나 사회적 관계로 완전히 가려진, 복숭아 같은 “씨앗”이 없다. 대신 자아는 양파와 같이 전적으로 여러 층위의 사회적 역할과 관계로 구성된다. -p.315-316

“양파인가, 복숭아인가?”

샌델의 자아는 부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부담들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만든다. 무엇보다도, 복숭아가 복숭아씨는 아니다. 복숭아에 과육이 없으면 그것은 전혀 다른 사물이다. 유가적 역할 윤리에서 사람은 새로운 역할과 관계로 확장해 나가면서 층을 쌓아 간다. 그러나 양파는 핵심이 없다. 층층이 다 벗겨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핵심이나 씨앗의 존재 여부는 자아에 대한 두 관념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샌델의 입장에서 핵심적 자아의 부재는 비판적 반성의 부재를 함축한다. 그렇기 때문에 샌델은 이 은유에 동의하면서도 일부로 복숭아 편에 선다. -p.319

샌델은 여기서 두 가지 중대한 오류를 발견한다. 첫째, 좋음보다 옳음을 우선하는 롤스의 입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고, 둘째, 우리의 내러티브 또는 “연고”에서 우리 자신을 떼어 내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p.321-322

역할, 관계 그리고 공동체

그리고 덕에 대해 논의할 때도 가족 구성원을 특별한 종류의 연합으로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자식 된 도리로서의 존경/가족에 대한 존중(효(孝)), 형재자매간의 결속인 제(悌), 그리고 부모가 자녀에게 쏟는 자(慈)를 강조하지 않았다. -p.327

역할 윤리에 대한 설명에서 모든 윤리적 쟁점들과 시민적 관심들을 가족 관련 결속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가족애는 육적 역할 윤리에서 도덕을 위한 근거이고-여기에서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이 발달한다. -p.327

유가적 역할 윤리는 자아가 가진 개별적 역할과 관계를 강조하는 한편 샌델은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p.330

11장 중국 철학에서 배우기 - 마이클 샌델

밀은 개체성과 자유를 찬양하는 반면, 공자와 맹자는 가족과 효도의 도덕적 우선성을 인정한다. -p.337

정의, 조화, 공동체

서양 철학적 전통은 개인주의적이며, 자유와 자율 그리고 선택의 자유를 강조한다. 반면 중국 철학은 공동체주의적이고, 가족과 조화, 효를 강조한다. -p.341

조화로운 공동체에서의 각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발견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의 정체성과 선에도 공헌한다.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각각의 사람은 동료 공동체 구성원들의 공헌에서 이익을 얻는다. -p.344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도덕 교육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재화를 분배하는 정의로운 방법은 그 재화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달려 있다. 최고의 플루트는 최고의 플루트 연주자에게로 가야 하는데, 이는 훌륭한 악기가 존재하는 이유-연주가 잘되는 것-이다. 정의로운 분배란, 적절한 덕 혹은 장점, 탁월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좋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p.347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정치 지도자들이 법을 활용하여 덕을 장려하고, 공자에게는 그들이 개인적 모범을 통해, 예를 통해 통치함으로써 덕을 도모한다. -p.349

시민의 덕인가, 도덕적 덕인가?

내가 이 질문에 대해 시민의 덕은 공적인 반면 도덕적 덕은 사적이라고 대답함으로써, 그리고 자치는 오직 공공의 재화에 관한 것일 뿐이라고 대답함으로써 이 도전에 응답할 수 없다고 한 점에서 주후이링은 옳다. -p.355

천라이는 실질적 도덕 판단에서 정치의 독립을 주장하는 현대 정치철학의 경향을 “위험하다”며 거부한다. 정치가 각 사람이 단지 한 표를 행사할 뿐인 선거 게임으로 바뀌어서, 정치가 사회에 대한 헌신, 질서, 윤리, 혹은 도덕과 아무 연관도 없는 것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그 결과는 사회적 ·정치적 삶에서 도덕이 부재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p.358

젠더 다원주의 그리고 음양

그녀는 중국 철학의 음양 우주론이 서양의 젠더 개념보다 덜 이원론적이며 남성 지배에 덜 복종하는 젠더 관계를 이해하는 길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전통 중국에서 젠더는 “상관적이고 음과 양, 땅과 하늘, 안과 밖을 모델로 하는 상호 의존성과 상보성의 개념 위에서 구성된다.” -p.360

도가, 자만심 그리고 제약

나는 유전적 강화를 위한 충동이 “일종의 과도한 행위 주체성을, 다시 말해 우리의 목적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 본성을 비롯한 자연을 개조하려는 프로메테우스적 열망을” 대표하는 것으로 본다 -p.364

유전 공학에 대한 나의 비판과 관련하여 담브로시오가 가져온 세 번째 도가적 개념은 장자가 말하는 진인의 “사회적 규범과 역할을 수행할 때 그로부터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능력”이다. -p.369

유가적 인간관계를

에임스와 로즈몬트는 서양 철학에 친숙한 “자유롭고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서 자아 개념”에 몹시 비판적이다. 그들은 이런 개념이 철학적으로 오류가 있고, 로즈몬트가 부르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안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이데올로기적 장난질”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본다. -p.371

문화를 넘나드는 대화.

중국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과 나의 저작에 대해 나누는 일은 내게는 여러 수준에서 학습의 기회가 되었다. 이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향에서 이루어진 내 관점에 대한 도전들을 깊이 생각하게 했고, 중국 철학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경쟁력 있는 관점들 일부를 보게 해 주었으며, 문화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을 넘나들면서 대화가 어떻게 잘 진행될 수 있는지에 대해 놀라움을 주었다. -p.377

최종 생각은 이렇다. 중국 철학과 서양 철학 사이의 상호 학습을 위한 어떤 프로젝트든 어떤 비대칭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p.380


정리하고 보니 양이 엄청나게 많네요. 저는 독서를 할 때, 중요 부분마다 라벨지를 붙여서 읽는 게 습관입니다. 그리고 포스트를 작성하기 전에 붙여놓은 라벨지를 확인하고 정리하는데, 그래도 엄청 많이 나왔네요.

중국을 만나다라는 책은 2016년 상하이 화둥사범대학 폴 담브리시오 교수는 샌델을 중국으로 초청, 마이클 샌델과 중국 철학이라는 주제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하였으며, 이때 가졌던 주제 발표와 토론을 보완하여 집필되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중국의 철학적이나 사상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는 고대 시대부터 중국으로부터 많은 문화와 철학과 같이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동북아는 유교 문화권이죠.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했던 부분은 위에서도 작성했지만 한 번 더 강조해보겠습니다. 최고였습니다.

밖에서 보면 젓가락 두 개가 똑같아 보이지만, 쓰일 때엔 서로 달리 쓰인다. 하나가 똑바로 있을 때 다른 하나는 검지와 손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두 개의 젓가락을 바꾸면 역할은 그 반대가 된다. 젓가락 어느 짝이 어느 쪽으로 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두 개가 함께 조화롭게 작동하면 그만이다. 장자의 행복한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로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젓가락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p.173-174

책을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은 젓가락 두 개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시고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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